브랜드 없는 삶- 브랜드에 잠식된 세상에서 나를 꺼내는 법~ 고명한 저자 화제의 인문교양서










글을 쓰다 문득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에게서 “넌 유행이나 브랜드는 관심도 없고 험블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올라 혼자 웃은 적이 있다. 현재 50대인 나의 관점에서 어렸던 때의 그 말을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을 테지만, 그 시절 백화점 VIP 고객의 자녀였던 그 친구의 시각에선 브랜드를 따지지 않고 아무거나 몸에 걸치고 다니는 모습이 다소 추레하다고 여긴 것 같다.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옷차림을 하고도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고까웠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 없는 삶이라니, 그럼 당신 집에는 브랜드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요?” 그럴 리가. 오히려 내가 가진 물건 중 브랜드가 없는 것이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지 않을 뿐 세상의 모든 물건은 제조사의 브랜드가 새겨진 제품이니, 따지고 보면 나 역시 브랜드로 도배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책을 쓰면서 가진 것들을 하나씩 헤아려 보니 매일 입는 옷, 들고 다니는 가방과 사용하는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많이 알려진 브랜드 제품도 제법 갖고 있었다. 하지만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몇 퍼센트가 유명 브랜드 제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일상을 영위하고 나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 있어 브랜드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느냐가 중요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처음 하차감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능적인 우수성으로 실감되는 승차감보다 차에서 내렸을 때 뭇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그 순간의 기분이 중요하다는 의미라는 걸 깨닫고 난 후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찔하고 화려한 디자인을 우선시한 하이힐은 결국 몇 번 신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 그런데 내 발과도 같은 자동차에서 그 잠깐의 겉멋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이런 사례는 브랜드가 가진,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묘하고도 모순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예일 뿐이다. 품목별 기능과 가성비를 꼼꼼히 비교하며 제품을 추천하는 리뷰를 보면 그렇게도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마지막 순간에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는 건 누구나 선망하는 브랜드 제품이라니. 이쯤 되면 선택의 답은 돌고 돌아 결국 정해져 있는 걸까.
--- 「브랜드, 타인의 욕망을 세련되게 욕망하도록」 중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기술 발전을 이룬 덕분에 물건의 내구성과 기능성은 과거에 비해 훨씬 강해졌는데 버려지고 교체되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으니 말이다. 옷장을 들여다보면 수년 전에 구입한 겨울 패딩은 여전히 괜찮은 방수 기능과 보온 기능을 갖추고 있고, 역시 구입한 지 오래되지 않은 스포츠 의류는 뛰어난 내구성과 통기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장이 왠지 길어 보이고 품이 유행에 뒤떨어져 보여 더 이상 선택받지 못한 채 자리만 차지하다가 트렌디한 상품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질 때가 되면 냉정하게 자리에서 쫓겨난다.
--- 「클래식과 명품은 같은 말일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