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주제로 한 이번 호의 첫 글은 장현정의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하지 않을 용기」이다. 용기는 우리 안에서 어떤 순간에 저절로 솟아오르는 것이기에 작은 용기가 쌓여야 다음 용기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용기라는 말의 어원부터 더듬으며 알려준다.
류영진의 「사죄할 수 있는 용기」는 ‘할복’을 예로 들며 인정하고 책임지기보다 죽음이 더 쉬운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일본 문화에서 용기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고, 조봉권의 「용기에 관해 생각하는 일이 내게 용기를 주기를」은 글쓴이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의 경험을 솔직담백하게 고백하며 형가와 진무양, 모수,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의 용기에 대한 단상들을 들려준다.
이성철은 「일상의 용기」에서 그림, 소설, 영화를 통해 공동체 회복을 위한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권명환은 「나 자신으로, 우리로 존재할 용기」에서 매일 진료실에서 ‘용기’와 만나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감회를 인문학적으로 정리했다. 불안을 불안해하지 않을 용기, 세상에 참여할 용기, 불완전할 용기, 죽음을 마주할 용기 등 우리가 가졌던, 혹은 가져야 할 용기에 대해 들려준다.
김종기의 「용기란 무엇인가?」는 ‘벌거벗은 생명과 함께하는 용기, 그리고 실망하지 않는 용기’라는 부제를 달고 글쓴이의 담담한 고백과 함께 레비나스가 말하는 ‘벌거벗은 얼굴’로서 타인을 무조건 환대하는 것의 의미를 말하고, 더 나아가 ‘벌거벗은 생명’, 호모 사케르와 함께하는 것이 용기이며 스스로에게는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이기철의 「‘하자’고 말할 때 ‘다 함께’를 기억해야 한다」는 ‘저것이 무엇인고.’에 떳떳하게 대응한 사람 나혜석, 진짜 지금 해야 할 일을 말한 슬라보예 지젝, 그리고 다윗까지 세 사람을 ‘용기’ 안으로 소환시키고, 이지문의 「내게 용기는 부끄러움이었다」는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세상에 알린 이지문 중위의 글로 얼마 지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사실과 용기가 어떻게 연결되고 또 지금의 우리는 어떤 것을 생각해봐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조재휘의 「참된 용기의 형태란 무엇인가?」는 영화 <사일런스>와 <킹덤 오브 헤븐>을 통해 견뎌냄의 용기가 내면의 자유를 얻게 하고, 옳은 신념과 용기는 선을 지향하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심상교는 「서사 작품에서의 선과 악 그리고 용기」에서 서사 작품에 나타나는 선악의 대립 속에서의 용기가 모호해 보이기도 한다는 ‘용선악’을 인류문명의 발전과 불균형의 근간으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을 실었다.
김종광의 「앞으로도 용감합시다」는 글쓴이가 자신의 소설 속에서 그동안 만나온 용기를, 강동훈의 「읽지 않고 사지 않는 시대에 서점을 하겠다는 용기」는 오직 책만 믿고 갈 용기로 ‘크레타 서점’의 창업을 결심하고 운영해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훈의 「청동 손가락으로 써진 시詩」는 삶을 통째로 거대한 세계를 향해 새겼던 신용철 시인과 글쓴이의 인연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차윤석의 「부정할 용기」는 우리의 건축이 도시에 대한 평가를 냉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부정할 용기’를 통해 무엇을 가지고 갈지 또 버리고 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천정환의 「죽음 앞의 용기」는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현석은 「한센인, 용기 있는 자들」에서 지금은 역사 속 이야기가 된 한센인들의 삶을 들려주고, 강동진은 「과거의 용기를 현재로, 그리고 미래를 위한 용기로」에서 부산이라는 도시를 지키고 이어온 용기에 대해, 또 지난 용기들이 지금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마침내 미래를 위해 필요한 용기에 대해 말한다.
이번 호에 실린 총 17편의 ‘용기’에 관한 글이 독자들에게 진정한 용기의 의미에 대해 사색해보는 계기를 주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도록 실제로도 용기를 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인문무크지 ‘아크 ARCH-’는 가벼운 일회성의 텍스트들로 둘러싸인 채 질주하는 세계에서 묵묵히 지금보다 더 단단한 호흡을 견지하며 여러 전문가와 함께 매호 정해진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과 세계의 지금 현재를 톺아볼 것이다. 건축의 기본이 터를 다지는 일인 것처럼, 유행에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 현실과 인문 담론을 환기하고 넉넉하고도 단단하게 인간과 세계의 기본을 다지려는 아크의 행보를 응원해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