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건넨 수 만 가지의 단어와 문장들이 당신에게 닿지 못하고 그녀의 자리로 돌아와 발밑에 쌓인다. 온통 당신으로 뒤덮인다. 머리끝까지 잠겨도 좋을 당신은 어디쯤에 있을까.
〈김앵두_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중에서, 23p〉
랑이 영원히 반복될 진부한 클리셰가 된다고 하여도, 그 단어 하나로 우리는 여전히 길이를 재고, 부피를 측정하며 삶을 건축하며, 또 모른 척 기대하는 날들이 많을 테니 내성이 생겨 버릴 것 같아서 피해 버린다는 핑계는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H_ ‘미처 끝내지 못한 것들과 미처 시작하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미처 잊지 못한 것들’ 중에서, 120p〉
당신의 편지를 달빛 아래 받쳐 들고 ‘나는 못난 사람이니 이렇게 될 건 당연한 일이었어’라고 생각하는 어느 밤. 생각이 점점 자책이 되어 가슴 언저리가 자꾸 시큰해지는 게 아니겠어요. 당신이 떠나서 아픈 걸 보면 나도 당신을 사랑했나 봅니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당신을 힘들게 했군요. 뒤늦게 눈물이 나옵니다. 펑펑 웁니다.
〈시훈_ ‘사랑은 우리에게 앞으로도 남을 일이어서’ 중에서, 144p〉
아무리 가도 닿지 않는 사람이다, 당신은. 처음 만났을 때의 차가운 공기는 저 멀리 사라졌고 여름이 성큼 다가왔는데,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고 당신은 여전히 한참을 멀리 서 있다.
나와 같은 마음인 줄 알았건만. 그 같은 마음이란 것은 몇 마디 공허한 말과 함께 내게 오기도 전에 사라진다. 내게 닿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거리가 너무 먼 탓일까, 아니면 애초에 그댄 내게 어떠한 말도 보내지 않았던 탓일까. 전자와 후자를 저울질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대의 의지가 확고했다면 발걸음을 팔아서라도 내게 마음을 전달했을 테니까.
〈선지음_ ‘조금 더 살아봐요, 우리 아직 사랑하고 있잖아요’ 중에서, 290p〉
당신은 같은 우주에 있겠지. 영영 다른 우주로 나뉜 것만 같은데, 그래도 이 우주에.
하다못해 나는 빛처럼 내달릴 수 없고, 같은 우주는 빠름보다 더 빨리 멀어져 간다. 먼저 가 닿았다 느끼는 마음을 배신하는 그런 감각이 있다. 눈부신 햇살, 부는 바람, 찬 공기의 냄새, 거칠거나 매끈한 바닥과 벽, 잘못 내린 커피 뒤에 집요하게 남는 쓴맛. 내가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나를 느끼게 하는 모든 곳에서 나는 존재하고, 결국 온 있는 몸으로 너의 부재를 느낀다.
〈탈해_ ‘사랑은 알 수 없는데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중에서, 3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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