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나는 그의 말처럼 우울을 부인했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있었던 자연치유로 자식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면 나을 거라는 그의 말이 가끔은 위로가 되었다. 그 당시에 나는 알코올 의존증이 있었고, 그는 내가 우울할 때마다 술을 권했다. 내 주변인들은 강압적이지 않는, 또 적극적이지도 않은 태도로 일관했다. 그들은 내 우울증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사라지는 신기루가 되길 바랐다. 술을 마시면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탓에 오히려 내게 술을 권했다. 그 당시에 내 우울증 치료제는 항우울제가 아니라 술이었다.
---「우울은 거절할게」중에서
그래. 아무리 가족이라도 우울을 견뎌낼 수는 없겠다. 우울은 주변에게로 옮아가는 전염병과도 같으니. 그냥 전염성이 강한 병에 걸린 채로 몇 년쯤 시간이 지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래. 그는 전염성이 강한 병을 가진 내 곁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다. 나는 나을 방법을 알지 못하고 나을 생각도 없으니까. 앞으로도 절대.
---「무채색의 우울」중에서
엄마는 못하는-것과 못-하는-것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엄마뿐 아니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할 거다. 그저 말장난이라고 생각하겠지. 언제나 그렇듯 엄마와의 대화는 늘 엇나간다.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며 희열을 느낀다. 엄마는 한숨을 푹 내쉰다.
---「지금이 한창 사춘기라고」중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슬픔을 말한다. 처음엔 걱정하던 주변인들은 점점 지쳐간다. 처음엔 슬펐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슬픔은 없다. 처음엔 슬펐다가 나중엔 왜 슬픈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고통이 남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늘 함께 하던 이가 갑자기 낯설어 보이게 된다.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건 서로를 점점 멀어지게 하는 일이 분명하다. 익숙해짐 끝에 결국 무관심만 남으니까.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고」중에서
부정적인 말을 듣는 사람과 긍정적인 말을 듣는 사람은 풍기는 에너지부터 다르다. 그저 말 한마디로도 충분한 사랑인데, 나는 그동안 너무 인색했다. 사랑은 꼭 받은 만큼 돌려줄 필요도 없지 않은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돌려주어도 손해 보지 않는 것 그게 사랑이다.
---「아주 작은 엄마의 방」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