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푹 쉬고 싶다는 신념 하나로 쌍둥이를 동자승으로 단기 출가시켰던 지난여름, 23일 동안 아이들을 그리워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1분 차이로 운명이 갈린 두 아들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둘은 엄마의 몸을 동시에 빌려 쓴 자궁 동기일 뿐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같은 게 없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기어이 인정하지 않았던 육아의 진리를 출산 6년 만에 드디어 깨달았다. 큰 아이는 매우, 상당히, 아주 감성적인 사랑둥이이고, 둘째 아이는 초초초초초초초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을 이제는 확실하게 안다.
그동안 나는 왜 두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걸까. 그동안 나는 왜 편협한 사고에 갇혀 이토록 다른 두 아이를 같은 아이로 키웠던 걸까. 쌍둥이가 다른 인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난 후의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두 배로 바빠졌고, 두 배로 힘들어졌다. 오해는 금지다. 기쁨은 두 배 이상이니까. 하하.
기자로 살 때의 나는 어땠을까. 돌이켜 보면 나는 내가 취재하는 것만 보고 듣고 느꼈었다. 그게 전부인 줄 알았고, 그게 진실인 줄 알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당연히 다른 것을 느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꽤나 깊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니 인터넷이라는 세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존감만 높은 기자였다.
쌍둥이를 키워야 했기에 노트북을 접고 유모차를 끌면서 넓은 세상이 보였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많고, 나보다 잘난 사람은 더 많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비좁은 한 칸 책상에서 눈에 불을 켜고 노트북을 두드렸던 그때의 나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는지를 몰랐다.
이처럼 사고방식은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편협한 사고는 좁고 긴 터널을 낑낑거리며 지나는 것과 같다. 살같이 벗겨질 것이고, 숨이 막힐 것이고, 온몸은 땀으로 젖을 것이다. 편협한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보편적인 시각을 갖는 게 나을 것이다. 비관적인 사고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늘 화가 날 것이고, 삶은 불만으로 쌓일 것이다. 비관적으로 사고하기보다 비판적으로, 비평적으로 사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