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서의 18년 유배 생활은 1801년 겨울부터 4년간 사의재에서, 1805년 겨울부터 1년간 고성사 보은산방, 1806년부터 1년 반을 제자 이청의 집, 1808년 봄부터 10년간 다산초당에서 지냈다. 사의재에서 황상, 이청을 비롯한 6명의 제자, 그리고 다산초당의18제자와 어우러져 완성한 500여 권의 저술이라는 큰 족적을 남겼다. 제자 황상의 저서 『치원유고』에서 “스승은 귀양 생활 20여 년 동안 먹을 갈고 글을 쓰는 일로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라고 적었다. - 35p
추사는 54세의 나이에 제주도로 유배되어 8년 3개월을 제주에서 지냈다. 철저히 주류였던 그는 한순간 나락에 떨어져 고난과 좌절 속에서 노년을 보냈다. 비록 제주라는 섬에 갇혀 있었지만, 그는 공간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유배지에서 완성한 추사체와 세한도보다, 벼루 열 개를 갈아 닳게 하였고 천 자루의 붓을 다 닳게 노력한 그 처절한 과정이 그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였을지 모른다. - 36p
한 시절의 영화는 사라졌어도 세상을 지탱하는 곧은 형식들은 우리 앞에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일정 부분을 잃지 않고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선택의 기준은 권력과 돈이 아닌 명예와 자유이다. 그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나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결기 있게 실천하는 자만이 가장 소중한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다. 적어도 유배길에서는 얻을 것도 받을 것도 없기에 비로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 - 47p
다산초당 가는 길은 역경과 시련, 절망과 좌절로 더 떨어질 나락이 없는 뿌리의 길로 연결된다. 정호승 시인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통해 고통의 접점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마지막 하나의 고통마저 뿌리의 길 속에 가둔다. 뿌리의 길은 촘촘하기 때문이다. 그물 같은 결절점은 역경과 시련을 얽어맨다. 그 시련과 역경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고 했다. 살아온 길과 다가올 길들을 멍에처럼 처절하게 얽혀 있는 길로 만들었다. 어느 하나 민초의 과오를 놓지도 않고 용납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 65p
뿌리의 길을 오르는 이들은 뿌리와 함께 땅속 깊이 파고들고 집착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다산을 생각하고 저마다 살아온 자신을 돌아본다. 약간은 숨이 찬 오르막길이 될 수도 있지만,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내려놓음을 본다. 모두가 평온한 얼굴이며 선한 얼굴이다. 세상의 다툼이나 경쟁, 욕망을 걷어 낸 얼굴이다. 다산이 자찬묘지명을 쓰고, 추사가 판전 현판 글을 쓸 때의 모습이다. 뿌리의 길은 어느새 가쁜 숨 뒤로 사라졌다. - 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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