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5백 평이 0.75평 독방에서 징역을 사는 무기수인 양 턱없이 비좁게 느껴지곤 한다. 그때마다 돌려 생각한다. 시속 7백 킬로미터로 비행하는 제비갈매기의 날갯짓도 광막한 우주에서는 한 점에 불과하다. 하루 종일 배밀이를 해도 고작 몇 십 미터에 불과한 민달팽이의 이동을 그 누구라고 덧없노라 함부로 판단하겠는가.
그러니까 모두 마음먹기 나름이다.
마음먹기 나름.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다. 혼자 있지 못해 외로운 것이다.
8년 동안 등대를 바라보며 자족하는 법을 배웠노라고, 재우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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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희는 긴 한숨을 여운처럼 남기고 사라졌다. 난희의 침묵을 이해하고 싶었고, 한편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삶은 확신으로 살아지지 않는다. 미명의 안개 속에서 낯선 길을 찾아 나선 것과 같다. 그저 살아보는 것이다. 뚜벅뚜벅, 혼돈과 불안을 누르며 저 미지의 땅으로 가보는 것이다. 산을 만나면 넘어서고, 물이 가로막으면 건너고, 막다른 길과 마주치면 이제껏 걸어왔던 그 길이 바로 되짚어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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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는 고개를 젖혀 등탑을 바라보았다.
사람과 멀어져서 외로운 게 아니다. 물리적 거리는 마음의 거리와는 무관하다.
구명도에서 지낸 세월이 깊어지면서 재우는 알았다. 구명도라서 버림받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버림받은 자를 두 팔 벌려 품어준 구명도였고, 등대였다.
등대지기는 등댓불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었다. 그건 세상 사람들의 몫이었다. 등댓불을 흩뿌리는 등탑, 애오라지 거기에만 눈길을 주는 것이 등대지기의 숙명이었다. 그게 등대를 온전히 사랑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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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 고목에서 누구는 세월의 흐름만 살펴보지만, 또 누군가는 세월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등대가 바다의 길잡이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등대의 불빛으로 마음의 길까지 짚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 믿음이 있기에 등대를 떠나도 아주 떠나지 못하는 정 소장이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재우 역시 무인등대 전환과 구조 조정의 광풍이 자신을 비껴가길 소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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